
배움은 누구의 것인가
— 유럽의 여성들은 수녀원 담 안에서 책을 썼고, 이슬람권의 여성 학자들은 남성 제자를 길러 냈으며, 동아시아의 여성들은 금지된 글을 몰래 익혀 자기 글자로 문학을 꽃피웠다 —
Who was allowed to learn in the Middle Ages? In Europe, the new universities were closed to women, but the convent opened another door. Hildegard of Bingen (1098–1179) led her community from 1136, wrote Scivias, composed music and corresponded with popes and emperors; in 2012 she was declared a Doctor of the Church. The abbess Herrad of Landsberg compiled a great illustrated encyclopedia for her nuns, and in 1405 Christine de Pizan, Europe's first professional woman writer, argued that girls taught the same subjects as boys would learn just as fully. In the Islamic world, tradition credits a merchant's daughter, Fatima al-Fihri, with founding the Qarawiyyin mosque in Fez in 857 or 859 — later a renowned centre of learning, though some historians doubt the story. Above all, women were teachers of hadith: the great scholar Ibn Asakir (d. 1176) recorded eighty female teachers, and Ibn Hajar and al-Sakhawi each studied with dozens of women. In East Asia, learning was formally a man's world. Ban Zhao completed the Book of Han and tutored an empress, yet her Lessons for Women taught submission even as it asked why girls should not be taught to read. In Japan, Murasaki Shikibu learned Chinese by listening to her brother's lessons and hid it at court, then wrote The Tale of Genji in the women's script, kana; in Joseon Korea, Queen Sohye wrote the first women's textbook with Korean script in 1475, and Heo Nanseolheon's poems, saved by her brother, were published in Ming China. The space, the script and the recognition: three keys to the door of learning.
대학의 문이 닫힌 유럽에서 여성들은 수녀원에서 책을 쓰고 교황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슬람권에서는 여성들이 하디스(예언자의 언행)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어 이름난 남성 학자들을 길러 냈으며, 동아시아의 여성들은 공식 학문에서 밀려났지만 한문을 몰래 익히고 가나와 한글 같은 "자기 글자"로 문학과 교육의 길을 열었습니다 — 배움의 문은 언제나 누군가가 먼저 밀어서 열었습니다.
1. 시대와 배경
⑤ 사회와 신분 구간의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58편에서 "힘을 가진 사람의 명예"를 살폈다면, 이번에는 오랫동안 배움에서 밀려나 있던 사람들,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중세의 세 문명 모두 공식적인 학문의 자리 — 대학, 관청의 시험, 학자의 직함 — 는 대부분 남성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이 닫혀 있다고 배움이 멈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성들은 저마다 다른 문으로 지식의 세계에 들어섰고, 그 문은 문명마다 달랐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빛난 사람이 힐데가르트 폰 빙엔(1098~1179)입니다. 어린 나이에 수도원에 맡겨진 그녀는 1136년 수녀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고, 1142~1151년 첫 대작 『스키비아스』를 썼습니다. 1150년에는 수녀 20여 명과 함께 루페르츠베르크에 새 수도원을 세웠고, 자연과 의학을 다룬 책, 지금까지 전하는 69곡의 음악, 400통 가까운 편지를 남겼습니다. 편지를 받은 사람 중에는 교황과 프리드리히 1세 같은 황제도 있었습니다. 2012년 가톨릭 교회는 그녀를 "교회학자"로 선포했습니다.
알자스의 수녀원장 헤라트는 1159년부터 1185년까지 수녀들을 가르치려고 그림 336점이 든 백과사전 『호르투스 델리키아룸(기쁨의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원본은 1870년 전쟁 중 스트라스부르 도서관과 함께 불타 버렸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잃고 글을 써서 가족을 먹여 살린 "유럽 최초의 직업 여성 작가" 크리스틴 드 피장은 1405년 『여성들의 도시』를 펴내고, 같은 해의 다른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여자아이를 학교에 보내 남자아이와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관습이라면, 그들도 똑같이 충분히 배울 것이다."
더 확실한 기록은 하디스(예언자 무함마드의 말과 행동을 전하는 기록) 학문에 남아 있습니다. 하디스는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직접 전해 받아야 했기에, 누가 누구에게서 배웠는지가 꼼꼼히 기록되었습니다. 그 기록 속에 여성 스승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다마스쿠스의 대학자 이븐 아사키르(1176년 사망)는 여성 스승 80명에게 배웠다고 적었고, 15세기 이집트의 이븐 하자르는 53명, 사하위는 68명의 여성 스승을 꼽았습니다. 수유티는 자신이 인용한 스승 130명 가운데 33명이 여성이었다고 밝혔습니다. 10세기의 아미나 빈트 알후사인 알마하밀리(987년 사망)처럼 상속법에 밝은 여성 법학자도 있었습니다.
이 전통은 오래 이어졌지만, 한 연구자는 17세기 이후 근대로 오면서 여성 학자의 자리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지적합니다. 배움의 문은 한 번 열렸다고 영원히 열려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1세기 초 일본의 무라사키 시키부는 남자 형제가 한문 수업을 받을 때 옆에서 들으며 한문을 익혔고, 그보다 더 잘 외웠습니다. 아버지는 "이 아이가 사내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고 합니다. 궁에서 일할 때 그녀는 한문을 아는 것을 숨기고, 황후에게도 몰래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남성들이 한문으로 공식 문서를 쓰던 시대에, 여성의 글자였던 가나로 『겐지 이야기』를 써서 일본 문학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세웠습니다.
조선에서는 1475년 소혜왕후가 『내훈』을 펴냈습니다. 한문에 한글 풀이를 붙인, 한글로 된 첫 여성 교육서입니다. 그 내용은 유교적 부덕(婦德)이었지만, 여성도 읽을 수 있는 글자로 된 책이 처음 생긴 것입니다. 16세기의 허난설헌(1563~1589)은 뛰어난 시를 썼지만 27세에 세상을 떠나며 작품을 불태우라고 했습니다. 동생 허균이 남은 시를 지켜 냈고, 그 시는 17세기 초 명나라에서,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책으로 나와 국경을 넘어 읽혔습니다.
📊 세 문명 한눈에 비교하기 — 여성은 어디서 어떻게 배웠나
| 구분 | 유럽 | 이슬람권 | 동아시아 |
|---|---|---|---|
| 닫힌 문 | 대학(볼로냐·파리) | 공식 직함과 관직은 대부분 남성의 몫 | 과거 시험과 관직, 공식 학문(한문) |
| 열린 문 | 수녀원 — 라틴어·필사·음악·약초 | 하디스 전승 — 스승과 제자의 직접 전수 | 집안의 어깨너머 배움, 가나·한글 같은 자기 글자 |
| 대표 인물 | 힐데가르트, 헤라트, 크리스틴 드 피장 | 파티마 알피흐리(전승), 이븐 아사키르의 여성 스승들 | 반소, 무라사키 시키부, 소혜왕후, 허난설헌 |
| 남긴 것 | 『스키비아스』, 그림 백과사전, 『여성들의 도시』 | 카라위인 모스크, 하디스 전승의 기록 | 『한서』, 『겐지 이야기』, 『내훈』, 『난설헌집』 |
| 한계 | 배움은 대개 수녀원 담 안에 머묾 | 근대로 오며 여성 학자의 자리가 줄어듦 | 여성 교육의 내용은 주로 순종과 부덕 |
| 공통점 | 공식적인 문이 닫혀 있을 때, 여성들은 다른 공간과 다른 글자,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배움의 길을 냈다 | ||
공간 — "배울 곳이 있는가." 유럽의 수녀원, 페스의 모스크처럼 여성이 모여 읽고 쓸 수 있는 자리가 있을 때 배움이 자랐습니다.
글자 — "읽을 수 있는 글이 있는가." 한문이 닫혀 있을 때 가나와 한글이 새 길이 되었습니다. 쉬운 글자는 배움의 문턱을 낮춥니다.
인정 — "배운 것을 누군가 기록해 주는가." 하디스 학자들이 여성 스승의 이름을 꼼꼼히 남겼기에, 우리는 천 년이 지나도 그들을 기억합니다. 허난설헌의 시도 동생이 지켜 주지 않았다면 사라졌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재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배울 공간과 읽을 글자, 그리고 그 배움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배움은 그 사람의 것이 됩니다.
2. 이 이야기가 전하는 핵심 지혜
천 년 전 여성들에게 배움은 주어진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 찾아낸 길이었습니다. 병풍 뒤에서 형제의 수업을 엿듣고, 수녀원의 촛불 아래에서 책을 쓰고, 스승의 이름으로 지식을 이어 갔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재능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재능이 꽃피려면 문을 열어 주는 사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문은 한 번 열렸다고 영원히 열려 있지 않기에, 세대마다 다시 지켜야 합니다. 배움은 그것을 원하는 모든 사람의 것입니다.
반도체 공장에서도 지식이 몇 사람에게만 머물면 라인 전체가 약해집니다. 공정의 미묘한 이상은 장비 앞을 가장 오래 지키는 사람이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람이 직급이나 경력과 상관없이 배우고, 묻고, 말할 수 있을 때 문제는 일찍 잡히고 수율은 올라갑니다.
그래서 좋은 현장은 지식을 문서로 남기고, 교육의 문을 넓히며, 누가 처음 발견했는지를 기록해 인정합니다. 공간·글자·인정 — 중세 여성들에게 필요했던 세 열쇠는 오늘의 클린룸에도 그대로 필요합니다. 라인의 수율은 가장 많이 아는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아는 만큼 오릅니다.
3. 오늘의 삶에 적용하기
배움에 늦은 때는 없습니다. 무라사키 시키부가 어깨너머로 한문을 익혔듯, 오늘 우리도 유튜브와 AI, 책 한 권으로 무엇이든 새로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나이에", "나는 원래 못해"라는 생각이 들 때, 천 년 전 병풍 뒤에서 귀를 기울이던 한 소녀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에게 문을 열어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허균이 누나의 시를 지켜 냈듯, 가족이나 이웃, 후배가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을 응원하고, 그들이 이룬 것을 알아봐 주는 것 — 그 작은 인정이 한 사람의 배움을 세상에 남기는 힘이 됩니다.
🎵 지혜와 함께 듣는 음악
이번 주의 곡,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따뜻하게 어우러지는 「Amberlight」입니다. 촛불 아래에서 글을 쓰던 수녀원장, 제자들에게 하디스를 전하던 다마스쿠스의 여성 스승, 병풍 뒤에서 한문을 외던 소녀 — 닫힌 문 앞에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들어보세요.
'Amberlight' by Scott Buckley – released under CC-BY 4.0. www.scottbuckley.com.au
💬 지혜의 숲 소통 공간
여기서부터는 이 글이 근거로 삼은 실제 자료와 이야기의 흐름을 정리한 부록입니다.
- 1세기 말~2세기 초반소, 『한서』를 완성하고 『여계』를 씀오빠 반고가 남긴 역사서를 마무리하고 황후를 가르쳤으며, 딸들을 위한 교훈서를 남겼습니다
- 857년 또는 859년(전승)파티마 알피흐리, 페스에 카라위인 모스크를 세움상인의 딸이 물려받은 재산을 바쳐 세운 곳이 뒷날 큰 배움터가 되었습니다(다만 이 전승을 의심하는 역사가도 있습니다)
- 11세기 초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한문을 몰래 익힌 궁녀가 여성의 글자 가나로 쓴 장편 이야기로, 1021년 무렵에는 전권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 1136년힐데가르트, 수녀 공동체의 지도자가 됨1142~1151년 『스키비아스』를 쓰고, 교황·황제와 400통 가까운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 1159~1185년헤라트의 『호르투스 델리키아룸(기쁨의 정원)』수녀들을 가르치려고 만든 그림 백과사전으로, 336점의 그림이 실렸지만 1870년 전쟁 중 불타 버렸습니다
- 1176년이븐 아사키르 세상을 떠남다마스쿠스의 이 학자는 여성 스승 80명에게서 배웠다고 기록했습니다
- 1405년크리스틴 드 피장, 『여성들의 도시』같은 해의 다른 책에서 "여자아이를 학교에 보내 같은 과목을 가르친다면 남자아이만큼 충분히 배울 것"이라고 썼습니다
- 1448년·1497년이븐 하자르(여성 스승 53명)와 사하위(68명)15세기 이집트의 이름난 학자들도 많은 여성 스승에게 배웠습니다
- 1475년소혜왕후의 『내훈』한문에 한글 풀이를 붙인, 한글로 된 첫 여성 교육서입니다
- 1589년허난설헌 세상을 떠남(27세)불태우라던 그녀의 시를 동생 허균이 지켜 내, 17세기 초 명나라에서,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책으로 나왔습니다
- 2012년힐데가르트, 가톨릭 교회의 "교회학자"로 선포800여 년 만에 그녀의 가르침이 교회 전체의 스승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글의 사실 관계가 실제로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하실 수 있는 1차 자료입니다.
이 편에서 다룬 세 문명의 여성들이 배움의 길에 남긴 실제 흔적입니다.
여러분에게 배움의 문을 열어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글을 가르쳐 주신 어머니,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해 준 친구, 처음으로 "잘했다"고 알아봐 준 선생님… 여러분의 배움을 지켜 준 사람의 이야기를 댓글로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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